글쓴이는 키 173 정도의 평범한 몸매를 갖고있다.  한국에서 평상시 보통으로 보이는 몸을 유지했을 때가 대략 72키로 정도 나갔고, 20대 중반 하루 4시간 가까이 운동할 때는 68키로 정도였고 그 이하로는 체중을 줄여본 적이 없다.  다만 그때는, 운동을 많이 하면서 먹는 것도 엄청 먹었었다. 거의 밤마다 피자, 아이스크림, 햄버거만 먹었으니.


결혼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사실 그렇게 살이 찌거나 하진 않았다.  운동을 따로 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먹는걸 크게 좋아하지는 않았었고 간식도 즐기지 않았으며, 특히나 밤 9시가 넘어가면 내 스스로가 그냥 왠지 음식을 먹기 싫어했었다.  그렇다고 마른 몸매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또 살이 찐 편도 아니었다.  그냥 "보통"이었다.


미국으로 유학을 오고난 뒤, 내 몸은 심각할 정도로 망가져갔는데 외국생활을 해보신 분이라면 알겠지만, 여기서 먹을만한게 기름진 음식이랑 탄산음료 외에는 그닥 먹을게 없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그것들이 점점 맛있어진다는 점이다.  나중에는 끼니 때마다 탄산음료 캔 하나는 반드시 있어야하고, 손에 잡고 먹으면 기름이 손을 타고 줄줄 흘러내리는 KFC 치킨이 맛있어지고, 결국에는 Costco 가서 탄산음료를 아예 박스채로 사다놓고 그것도 종류별로 한 박스씩 사놓게 되는 경지에 이르르게 됐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주방 창고에는, 콜라, 세븐업, A&W가 12캔씩 총 36캔 정도 있다.  그외에 몬스터 5캔, V8 20캔, 게토레이 등등...


유학오고 한 5년쯤 지났을 시기에 한국을 방문하게 됐고, 그때 장인어른 댁에 가서 간단한 가정용 기계로 혈압과 혈당을 체크해봤는데 수치는 놀라울 수준이었다.  혈압은 이미 고혈압 2기 환자의 수준이었고, 혈당도 식후혈당치가 200이 넘었으니 이미 당뇨환자 수준이나 다름 없었다.  소변에서 당이 배출되지만 않았을 뿐이었지. 심각한건 알고있지만 그래도 아직 30대라는점, 그리고 먹는걸 너무 좋아하고 간식도 너무 좋아하고 단것도 좋아하고 아이스크림도 좋아하고하니 사실 먹는걸 끊어가면서 하는 다이어트는 못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운동을 하려니, 일단 힘들고 귀찮고 왜이리 시간 뺏기는 기분이 드는지, 시간낭비가 크다는 생각도 들고...


그러다 어느날 다른 분들처럼 SBS에서 하는 간헐적 단식에 대한 다큐를 보게되었고, 저거다 싶었다.  졸린건 죽었다깨나도 못참지만, 굶는건 잘참는 날 잘알기에 왠지 저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아예 그 다음날부터 가장 극단적인 방법인 1일 1식을 시작했다.  나름대로 정한 규칙으로는


1. 점심만 먹는다.

2. 많이 먹지않고, 늘상 먹는대로 먹는다.

3. 다양한 영양섭취는 고려하지 않고 그냥 먹고싶은걸 먹는다.

4. 점심시간 12시에서 1시 사이에는 밥 외에 간단한 간식들-사탕, 과자, 젤리- 정도는 조금 먹되, 그 시간 이후로는 물 이외엔 어떠한 것도 섭취하지 않는다.

5. 식사 30분 전에는 견과류 15알과 아주 조그만 초콜렛 하나를 먹었다.  사실, 맛있어서 먹었다.  초콜렛이랑 견과류랑 같이 먹으면 스니커즈 먹는 느낌 난다.


였고, 그동안 단식을 하면서 염두에 뒀던 것은, 다큐에서 봤는지 어디서 봤는지 기억은 잘 안나지만 사람의 뇌는 배가 고픈 것과 목이 마른 것을 혼동한다고 했다.  또한, 배가 고파서나는 꼬르륵 소리는 신체를 건강하게 한다고 했다.  단식을 하면 내장지방부터 태우고, 그 다음 뱃살을 태운다고 한다.  또한, 굶는 것이기 때문에, 다시 예전처럼 먹으면 예전으로 돌아가는건 확실하다.  즉, 요요는 100% 온다.  글쓴이는 "기초 대사량"이 뭔지 알고있었기 때문에, 근육량이 줄면 굶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다.  따라서, 글쓴이의 직업상 몸을 크게 움직이지 않는 직업은, 아무리 남자라고 해도 하루 권장 칼로리가 1700 정도 밖에 안되기 때문에 이 상태에서 기초대사량까지 줄면 하루에 한 끼만 먹어도 큰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뭐 암튼, 이 정도를 늘 염두에 뒀다.



글쓴이의 체중은 대략 82키로 정도였고, 키는 위에 언급했지만 대략 173 정도 된다.  잠잘 때 코를 많이 골고, 가끔 이유 없이 손이 저리고, 역류성 식도염이 있다.  단식을 하는 것이므로 역류성 식도염이 심해지진 않을까하는 걱정이 가장 컸다.


첫날은 당연히 힘들었다. 원래도 아침은 잘 안먹었기 때문에 점심 먹는거야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퇴근하고나서 집에 가니까 너무 힘들었다.  손만 뻗으면 닿는 위치에 있는 수많은 간식들은 정말 참기 힘들더라.  그래도 참았다.  물만 먹으면서 그냥 TV보고 인터넷 하고 그러면서 버텼다.  2일째 되면서 체중이 빠지는게 눈에 보이더라.  사진 공개한다.





사진을 보면, 맨 왼쪽 사진이 시작 전, 중간 사진이 1주일 후, 맨 오른쪽 사진이 시작일로부터 3주차 중간쯤 되는 날이었다.  위의 사진을 지인들에게 보여주니 다들 놀라더라.  그럴 수밖에 없는게, 아무리봐도 몸의 변화가 극적이기 때문이겠지.

1주일이 지나면서 체중이 5키로가 빠졌다.  그것도 배만 빠졌다.  1주일 만에 엄청나게 빠졌기 때문에 내 눈으로도 살 빠진게 보일 정도였다.  아무래도, 지방 뿐만 아니라 근육도 같이 빠진게 분명하다.  먹는게 땡기기보다, 오히려 단게 더 땡기더라.


2주일이 지나면서는 체중이 많이 빠지진 않았다.  굶는건 익숙해졌고, 저녁식사 시간이 없어졌기 때문에 뭔가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 좋았다.  또한, 마트를 가도 별로 살게 없어서 생활비도 그만큼 줄었다.  정말 엄청나게 생활비가 줄었다.  또한, 자연스레 위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먹는 양도 줄었다.  1일 1식 한다고 점심 때 많이 먹어야겠단 생각을 해도, 생각했던 것만큼은 커녕 평소 먹는 양도 다 못먹는다.  역류성 식도염은 다이어트 이후 재발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와이프 말로는 잠잘 때 코 고는 것도 없어졌다더라.  적고나니 무슨 만병통치약...  다만, 한가지 눈에 띄는 단점은, 확실히 몸에 기력이 떨어진다.  정말 몸에 힘이 없다는 게 느껴지고, 내 스스로도 내가 비실비실해졌다는게 느껴진다.  2주차에서는 총 2키로 정도가 빠졌다.  특이사항으로는 하루 정도는 저녁을 먹었고, 아주 고칼로리 음식(치맥에 이것저것)을 먹었다.  하지만 대략 36시간 후에는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다.


3주째에 접어들면서 근력운동을 시작했다.  10파운드 (약 4.5키로)짜리 아령 두개를 들고 했는데, 처음에는 10개씩 3세트도 힘들었다.  그리고, 윗몸일으키기 10회씩 3세트와 아령으로 하는 동작 2개 정도를 마찬가지로 10회씩 3세트를 반복하는 형태로 대략 40분 정도 진행했으며, 2일에 한 번만 했다.  내가 들은 바로는, 근력운동이라는 것이 근육에 손상을 주고, 이 손상된 것이 치유되면서 근육량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들었다.  이 근육회복에는 하루는 꼭 쉬어줘야한다고 들었다.  또한 지난주와는 다르게 와이프가 부탁해서 2일 정도 저녁을 먹었고, 피자와 치맥 등을 먹었다.  체중 변화는 없었는데, 아무래도 지방이 빠진 자리를 근육이 대신해서 그런 것이라고 추측된다.  근육은 지방보다 무겁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다만, 유산소 운동은 특별히 하지 않았다.


4주째에 접어들면서 아령운동 10개씩 3세트를 하던걸 20개씩 3세트로 횟수를 늘렸다.  하루는, 윗몸일으키기 10회씩 3세트 하던걸, 20/10/10 했다가, 갑자기 혈당이 떨어지면서 어질어질하고 온몸이 후들후들하는게 확실히 1일1식을 하면서는 운동을 과하게 하면 위험하다는 생각을 했다.  마찬가지로 하루 정도는 저녁을 밖에서 먹었고, 근력운동의 횟수가 늘어나니 팔에 점점 근육과 핏줄이 보이기 시작했다.  체중은 대략 2키로 정도 빠졌다.


며칠 전부터 20파운드짜리 아령 두개를 들고 10개씩 3세트로 운동을 진행했다.  마찬가지로 2일에 한 번만 운동을 했으며, 유산소 운동은 특별히 하지 않았다.  이로써 한달 동안 총 9.5키로 정도가 빠졌고, 허리는 물론이거니와 다리까지 살이 빠졌다.  모든 옷이 헐렁헐렁해졌으며, 전에는 작아서 입지못하는 옷들도 지금은 편하게 입을 수 있으며, 이제는 "평범한 몸매"가 됐다.  하루 한끼는 아주 자연스러워졌고, 매우 익숙해졌으며, 저녁에 치킨 사서 먹는다고 그다지 만족스럽지도 않고 행복하지도 않았다.  배가 부르면 몸이 움직이기 불편하니까 기분도 그냥 그렇고, 좀 무리해서 많이 먹으면 두통까지 왔다.  물론 단건 여전히 땡긴다.  몸에 설탕이 들어가면 행복감이 느껴지더라.  와이프 말로는 날 보면 가끔씩 딴 사람 같아서 깜짝깜짝 놀란다더라.  그 정도로 많이 빠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시점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건, 그렇게 적게 먹고 운동을 조금씩 하더라도, 이제는 체중이 눈에 띄게 줄지않는다는 점이다.  82키로에서 9키로가 빠졌으니 대략 73키로 정도 되고 사실 이 정도면 그럭저럭 평범한 체중이니까 더 이상 빠지는게 쉽지않은건 알겠는데, 전에 너무 뚱뚱해서 뱃살이 늘어난건지 어쩐건지, 아직도 배에 살이 많이 붙어있다는 점이다.  사진 상으로는 배가 쏙 들어간 것처럼 보이지만, 손으로 잡으면 엄청나게 잡힌다.  와이프 말로는 살이 많이 찌면 그만큼 살이 늘어나게 되는데 여기서 급격하게 빠지다보니 늘어난 살이 쳐진 거라고, 마치 임산부가 출산하고나서도 여전히 배에 살이 많은 것 같은 거라고 얘기하지만, 먹는 게 적고 운동을 어느정도 해주면 적게나마 체중이 조금씩은 줄어야하는게 정상이 아닌가?  현재는 72.5키로에서 더 이상 체중이 줄지않고 멈춰있는 상태다.  아무래도 유산소 운동을 해서 기초대사량을 올리는 게 중요해보인다.


이제 혈압이랑 당뇨를 체크해봐야하는데, 가정용 기기가 없는 관계로 언제 체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체크하게 되면 다시 자료 올린다.  


간헐적 단식이나 1일 1식 등의 단식은 일시적인 다이어트가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난 앞으로 이 생활을 평생 해야한다.  처음에 이걸 평생 할 수 있느냐는 와이프의 질문에는 좀 걱정스럽긴 했는데, 익숙해지고난 지금 시점에서는 솔직히 하루에 한 끼만 먹어도 충분하다.  먹고싶은게 있으면 내일 먹으면 되니까.


확실히 날씬해지니까 좋긴 좋다.  



경험자로써, 궁금하신 분 질문 받습니다.  리플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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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로나온 아이패드3를 구입하고 오면서 집 근처 악기점에 들러 그동안 사려고 벼르고있던 일렉기타를 샀다. 멕시코산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악기점 점원이 내가 보여달라는 기타에 앰프를 꽂아서 튜닝을 하고 직접 연주를 하게 해줬는데, 베이스기타와 피아노 외에는 칠 줄 아는 악기가 없는 관계로 소리를 들어봐야 뭐가 좋은지는 잘 모르겠더라. 어차피 이 기타로 연습을 하고 나중에 더 좋은 것을 사고, 이건 와이프를 주기로 약속을 한 터라 나보다는 와이프의 의견이 중요했고, 와이프는 무엇보다도 생김새와 색깔이 가장 중요했다...

레드와인 컬러와 펄이 들어간 은색(아이보리)의 기타 중에서 고른 건 와이프의 가장 좋아하는 컬러인 은색이였는데, 기타만 달랑 사갖고 차 뒷좌석에 눕혀놓으니 좀 뭔가 허전하긴 하더라… 뭐 입문용이니 일단은 크게 의미를 두지말고 그냥 연습용으로 열심히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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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기타를 사고싶어서 환장해있다. 컴퓨터에 빠져사는 UNIX Geek, 그리고 맥빠인 내가 왠 기타냐...

사실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쳤었는데 우연히 접하게 된 베이스 기타를 시작으로 헤비메탈 광이 되어버린 내가 뒤늦게서야 기타를 배워보고싶다는 생각이 들게됐다는 것이다. 쓸데없는 얘기긴 한데, 피아노를 배워서 그런지 몰라도 손가락 힘은 좀 센거 같다. 기계식 흑축 키보드를 쓰는데, 흑축도 너무 부드러워서 키압력이 더 쎈걸 치고싶다. 아무튼...

 

초등학교 1학년부터 5학년 때까지 피아노를 배웠고, 고등학교 1학년 때 교회에서 우연히 접한 베이스 기타가 나름 연주하기가 쉬워서 해보기로 했고,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 축제에서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게 됐으며, 대학교 때는 교내 락그룹 동아리에 보컬로 들어가게 됐다. 물론 베이스 기타는 허접한 수준의 연주력이었고 보컬로서의 자질도 그닥 좋진 않았다. 친구한테서 배운 샤우팅 창법을 좀 갈고닦아서 보컬이 됐을 뿐. 물론 당시 누구나 부른다던(?) 쉬즈곤도 1절은 부를 수 있었다.

당시는 내가 1학년이었고, 감히 1학년이 공연에는 나갈 수 없다는 나름 규율 아닌 규율이 있었기에 그냥 학교 교내 밴드 7기 보컬이 됐다는 타이틀에 만족을 했어야했는데, 축제 때 나갈 공연에 베이스를 칠 사람이 없었고 그나마 째끔 칠 줄 아는 날 내보내게 된 것이다. 사실 그때까지는 베이스치는 게 너무 싫었다. 재미도 없고 주목도 받지못하고 게다가 들리지도 않고...

나이가 들어서인가 이제는 베이스가 참 매력적인 악기라고 생각이 들어서, 나중에 악기를 배워볼만큼 여유로움이 생기면 꼭 베이스를 연습할테다 라고 다짐했었건만 인터넷에서 우연히 보게 된 애프터스쿨 이영의 베이스기타의 연주동영상을 보고(아이돌 가수가 악기를 친다는 데에) 깜짝 놀라서 더 찾아보니까 잉위 맘스틴의 Far beyond the sun의 연주를 보고 더 깜짝 놀라게 됐다. 그것을 시작으로 일반인 그것도 여자들의 일렉기타 속주 동영상을 보고,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은 베이스가 아니라 일렉기타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됐다.

상대음감 얘기할려고 서두를 이렇게 오래 쓰다니...

내가 대학 신입생 때 락그룹 동아리에 들어간 후에 일어났던 일이었는데, 선배들이 무슨 노래를 연주하고 싶어서 그 노래의 코드를 따낼려고 한참을 듣고있길래 내가 옆에서 한 마디 했다. "제가 따드릴까요?" 선배들이 놀라더라. 들으면 코드 아냐고 하길래, 듣는 즉시 바로 코드 나온다고 얘기를 했었고 그 이후로 내 별명은 베토벤이 됐다.

그런데 난, 피아노 배운 사람은 누구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별 거 아닌 줄 알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피아노를 배워도 안되는 사람은 안된다고 하더라. 내 동기는 "청음"이라고 부르던데, 난 그런 용어가 있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절대음감이니 상대음감이니 하는 말들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사실 내 음감은 형편없다. 아무 음이나 대충 하나만 치면 피아노 건반에서 그게 무슨음인지 도저히 구분이 안간다.

뭐 암튼 요즘 기타를 사고싶어하는 이유를 와이프한테 나름 합리화하기 위해 내세운 게 바로 내 상대음감 때문인데… 그 동안 머리 속에서만 만들어왔던 나만의 곡들이 지금 생각해보면, 일렉기타로만 표현할 수 있는 곡들로 작곡해왔다는 생각이 들면서 점점 더 기타가 치고싶어졌다. 그러면서 와이프는 상대음감이 뭐하는건지 인터넷으로 알아봤다더라. 생각난 김에 나도 알아보니까, 청음이나 상대음감이 있는 사람들은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면 곡 하나 정도의 계이름이나 코드 등은 다 따낸다고 하더라.

그런데, 내 경우는 한 번만 들으면 된다.  노래를 들으면서 동시에 계이름을 적는 게 가능하다. 속주는 당연히 한 번에 안된다. 게다가 아직 기타는 연주를 할 줄 모르다보니 소리에 많이 익숙치도 않다... 물론 이게 대단한 능력은 아니다. 난 아직도, 피아노 조금만 배우면 누구나 가능한 능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거 하나만으로도 기타를 배워볼만한 가치가 있겠지? 악기연주는 평생 취미라던데, 이제는 해봐야 남는 거 하나도 없는 게임은 그만하고 기타리스트 되보고 싶었지만, 막상 시작하려고하니 시간도 없고 먹고사는데 급급해서 결국은 포기했다.

텍사스에 있는 모 대학에서 음대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지인 말로는, 절대음감과 상대음감은 다른 능력이라고 하더라.  지인은 절대음감을 갖고있는데, 어떤 음악을 들으면 그게 절대음으로만 들리지, 계이름으로는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본인도 계이름으로 들어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 둘다 동시에 갖는 것은 잘 안된다고 했다.  사람마다 다를 수는 있겠지만, 내가 겪은 바로는 그렇다.  상대음감은, "음을 기억하는 능력"이 남들보다 조금 더 낫다는 정도라고 한다.  나는 어떤 음악을 듣고 계이름을 말하려면 최소한 한 마디는 들어봐야 계이름이 나오는데, 생각해보면 음을 몇 개 듣고나서 그 음들의 간격을 뇌가 본능적으로 계산해서 그것들의 관계 등을 장/단조로 파악하게되어 계이름이 나오는게 원리가 아닌가 싶다.  따로 훈련을 받았다거나 연습을 한 것은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  그냥 피아노를 좀 오래쳤고, 남들도 다 되는 건줄 알고 살아왔다.

글쓴이야 절대음감은 안갖고있으니 그 느낌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고, 글쓴이가 느끼는 상대음감은 이렇다.  예를 들어, 다음의 글을 읽어보자.

송강호 왈 "옛날에 말이야, 최영의 라는 분이 계셨어.  최.영.의"

마치 영화 넘버 쓰리에서 송강호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글쓴이도 어떤 음악을 듣든, 음을 듣는 순간 계이름 혹은 코드가 머리 속에 동시에 떠오른다.  생각을 안할려고 해도, 음악을 들으면 그냥 자연스럽게 떠오르기 때문에 좀 신경이 쓰인다.  어떻게 보면, 아무 생각없이 마음 편한하게 음악을 들으려고 해도, 뇌의 한 쪽 구석에서는 계속해서 계이름이랑 코드를 라디오 방송국 마냥 뿌려대니, 잡생각 없이 음악을 감상하기는 좀 곤란하다고 볼 수 있다.  다른 분들의 경우는 잘 모르겠다.


뭐 어쨌든 지금은 음악 안한지 오래됐고, 컴퓨터만 붙잡고 사는 컴쟁이이니 이 글을 너무 믿지는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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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안드로이드

그 외 2011. 6. 13. 21:14
애플포럼에 쓴 글이다.
쓰다보니 길게 쓰게되서 내 생각을 블로그에 올려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애플포럼에는 워낙 고수분들이 많고 자정정화력이 상당한 곳이기 때문에 최대한 주의하면서 썼다.


제가 애포에 낄만한 수준이 좀 안되서 그동안 눈팅만 하고있었습니다.
근데 안드로이드폰과의 비교글이라 한 말씀 올려보려 합니다.

1996년도에 리눅스를 처음 접한 뒤 그동안 리눅스만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M$ 타도를 외치며 살아오다 2007년도에 처음으로 맥을 구입했습니다. 그뒤로 맥OSX에 완전히 반해버리고 지금껏 사서모은 애플제품들이 제 분수에 맞지않게 어마어마합니다.
아이맥, 맥북 흰둥이, 맥북프로, 맥미니서버, 아이폰 2G, 아이폰 3G, 아이폰 4, 아이패드, 아이팟 클래식, 에어포트 익스트림... 맥북에어, 맥프로, 시네마 디스플레이만 사면 종류별로 하나씩은 다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액세서리들은... 말 안해도 다들 있으시죠? ㅎㅎ

아이폰이 처음 등장하면서 현재 2G라고 불리우는 알루미늄의 둥글둥글한 아이폰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때도 무지 예뻤는데요, 지금봐도 개인적으로 예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이것저것 여러 앱들을 받다보니 부족함을 느끼고 Jailbreak도 했고 Installous니 뭐니 하는 것들을 깔아가면서 수십 수백개의 어플들, 그리고 테마들을 적용시켜가면서 재밌게 썼었습니다. 그때까지는 앱을 돈주고 산다는 일에 대해서는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었죠.

그러다 점차, 매번 펌웨어가 나오면서 이것들을 다시 또 Jailbreak해야되고 하는 과정들이 너무 힘들어지면서, 차라리 이걸 알아보고 투자하고 스트레스 받는 시간에 그냥 앱을 돈주고 구입해서 편하게 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앱이 하나에 $20, $30씩 하는 것도 아닌데 $1, $2짜리 10개 사봐야 얼마 안되는 돈, 차라리 매달 일정하게 구입하는 책이나 음악씨디 같은 거라고 생각하자 하고 구입을 마음 먹었죠. 그런데 이미 늦었더라구요. 아이폰2G는 성능이 모자란 것이었습니다. 펌웨어가 3.1.3이 마지막이거든요.

폰도 오래됐겠다 새로운 스마트폰을 써보고 싶고, 친한 친구가 폰가게를 하니까 싸게주겠다 싶어 와이프에게는 갤럭시 S, 그리고 저는 HTC MyTouch 4G를 구입했습니다. 리눅스를 사랑하는 제게 리눅스 기반의 안드로이드는 Yopy 이후 많은 기대를 하게만든 폰이었죠. 루팅은 하지 않았습니다. 별로 하고싶지도 않았구요. 한국에는 출시되지 않았지만, HTC MyTouch 4G는 현재 T-Mobile에서 성능이 가장 좋은 폰 중 하나입니다.


3개월 쓰고 팔아버렸습니다. 그리곤 이번에 아이폰4를 장만했습니다.
도저히 못쓰겠더라구요. "전화기" 쓰면서 스트레스 받아본 건 처음입니다. 옛날 리눅스 폰인 Yopy 쓸 때도 이렇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Yopy야 말로 진짜 "리눅스폰"이었죠. GNOME을 띄우고 rpm으로 패키지 관리를 하면서 컴파일러까지 포함된...

뭐 제가 애플의 제품에 익숙해진 탓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B]주관적인 생각은 최대한 배제[/B]하고 비교해보겠습니다. 또한, 저는 [B]Jailbreak나 루팅을 절대로 하고싶지 않습니다[/B]. 저런 것들을 꼭 해야만 제대로 쓸 수 있는 기계라면, 아예 처음 나올 때부터 그렇게 나왔어야했겠죠. 지금 쓰는 아이폰4도 Jailbreak는 당연히 안(되겠지만)했으며, 앞으로도 할 생각은 단 1%도 없습니다. 모든 앱은 당연히 돈을 주고 구입하며 제가 가진 수백개의 앱 중에서 어둠의 경로를 통한 앱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써보겠습니다.


1. 배터리 관리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잠자기 전에 100%였던 배터리가 자고일어나니까 82%더라구요. 그나마도 이게 관리를 해준겁니다. 참고로 저는 페북, 트위터 등을 전화기에서 하지않습니다. 안드로이드에서 동기화시킨 계정은 오로지 구글 이메일 하나 밖에 없으며, 그외 기존에 추가되어있던 것들은 모두 꺼버렸습니다.
결국 친구한테 테스트용으로 받아서 HTC HD2를 받아서 며칠 써봤는데, 자고일어나기 전에 이미 배터리가 방전되서 알람이 안울리는 바람에 정말 심각하게 난처할 뻔 했었습니다.
전에 쓰던 아이폰2G는 잡히지도 않는 와이파이, 블루투스를 집 밖에서도 모두 켜놓고 다녀도 저녁시간에 집에 돌아와서 배터리가 70% 밑으로 떨어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밤에 충전해놓고 잠자고 일어나면 97%, 98%였구요. 다시 말해서, 와이파이/블루투스 등 집에 오면 키고 나가면 끄고 하는 행위에는 신경쓰고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두 키고다닙니다. 지금 쓰는 아이폰4도 그렇게 쓰고있습니다.
안드로이드는 배터리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 받았습니다.

2. 삭제가 안되는 어플이 있습니다.
HTC의 MyTouch 4G는 야후 메신저, 야후 메일, 그리고 T-Mobile에서 나오는 몇가지 어플이 깔려있는데요, 이게 부팅시 메모리에 자동상주합니다. Kill이 안되는데다 어플 삭제조차도 불가능하게 되어있습니다. 게다가 이것들의 램 점유율은 꽤 높습니다. 레퍼런스 폰을 쓰면된다는 말씀은 하지말아주세요. 루팅을 하면 된다고 하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제조사가 원하지 않은 행동을 하고싶지 않습니다. 

3. 프로세스 관리를 해줘야합니다.
아이폰도 해주긴 해줘야합니다. 하지만 아이폰의 프로세스 관리는 "선택"이지, "필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들에 예민하거나 신경을 많이 쓰시는 분들에게는 거의 "필수"겠지만요.
무료도 있지만 돈을 주면서까지 앱을 Kill시켜주는 또 다른 앱을 구입해야합니다. 컴퓨터 같다구요? 그럴거면 /bin, /sbin, /usr/bin, /usr/sbin 모두 퍼미션을 풀어주던가 해야죠. SSH 서버데몬은 바라지도 않지만 접속은 좀 되게해주던가요. 
제가 늘상 컴퓨터 얘기를 할 때마다 비교를 하는 게, "컴퓨터를 24시간 켜놓으면 폭발하는 줄 알고있는 제 와이프"를 보면서 예를 드는데요, 제 와이프가 갤럭시S를 썼는데 폰이 왜 자꾸 꺼지냐는 겁니다. 킬러앱을 안깔아줬거든요. 하루를 못가서 자꾸 꺼진다는 겁니다.
지금 쓰고있는 아이폰4 역시, 제 와이프는 메모리에 상주해있는 앱을 Kill시키는 방법(Hold Home button)을 전혀 모릅니다. 알고싶어하지도 않구요. 하지만 여태 생활하면서 폰 때문에 불편하단 소리는 안합니다. 다만 갤럭시S랑 색감이 좀 다르다는 얘기는 자주 하더라구요.

4. 미칠듯이 터져나오는 "오타"는 제 손꾸락이 삐어서 그렇다고 생각하겠습니다.

5. 폐쇄적이라고 욕먹는 애플조차도 메일, 캘린더, 연락처는 구글/MS/애플 등 여러 프로토콜/웹사이트 등을 지원합니다만, 안드로이드는 구글 이외의 계정은 허락치 않습니다.
집에서 맥미니서버를 쓰기 때문에 연락처, 캘린더 등을 식구들과 공유하고 있는데요, 믿었던 구글이 구글계정 이외에는 안되게끔 되어있다는 걸 확인한 이후로는 너무나도 실망이 컸습니다. 결국 연락처와 일정 등을 모두 구글하고 연동해야만 했으며, 가끔은 내 모든 정보가 구글에 다 들어있으니 누군가가 날 감시하는 것도 "가능"은 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것들이 잘 작동이나 되면 또 모르겠습니다만 무슨 연락처 하나를 놓고 몇군데에서 Sync를 하는지, 구글-T-Mobile-Facebook 등이 제 폰에 들어있는 연락처들을 서로 확인해가면서 여기는 있고 저기는 없는데 Link를 할거냐 말거냐부터... 가끔 연락처 확인해보면 폰에는 연락처가 있는데 구글에는 없고, 알고보니 T-Mobile에는 싱크가 되어있는데 Link는 안되어있고... 도대체 어떤 연락처가 어디에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 일일히 확인하는 것도 스트레스였습니다.
게다가 구글 연락처 페이지를 들어가면, 연락처 페이지가 있는데 무슨 기타 연락처라는 페이지가 따로있고, 또 자주 연락한 연락처라는 페이지도 따로있는데 들어가서 내용 확인하면 내용도 다 다르고... 암튼 정말이지 "전화기에 충실"해야하는 기본적인 기능이 너무 스트레스를 받게했습니다. 그래도 구글계정이니까 알아서 동기화는 잘 됐겠지 싶어서 이번에 장만한 아이폰4로 연락처를 동기화시켜보니 연락처 몇 개가 없더군요. 결국 제 맥미니서버의 연락처로 동기화 계정을 바꿔버렸습니다.

6. 신기능이 추가된 펌웨어는 남의 얘기였습니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는 Cynogen의 펌웨어는 아주 유명하죠. 기본적으로 루팅이 되야하는 사용할 수 있는 것인데, 제가 쓰던 MyTouch 4G는 루팅에 문제가 있는 폰이었습니다. 사실 루팅은 하고싶지 않았지만 배터리와 야후앱들 때문에 폰을 쓰기가 힘들어서 루팅을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고, 루팅에 필요했던 앱들이 CPU 사용량을 100%로 만들어버리는 문제를 만들어서 그것 때문에 몇 번이나 리셋을 했습니다. 결국 진저브레드만이 갖고있는 신기능들은 HTC에서 업데이트 해주기 전에는 그냥 "포기"하고 살아야하는 남의 얘기더라구요.

7. 리셋 후 마켓에 접속하면 필수앱을 자동으로 업데이트 합니다.
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데이터 요금제의 용량이 적은 사람들은 리셋 3번만 하면 요금 Overcharge 나오겠더라구요.

8. 제 맥미니서버의 VPN 연결이 불가능한 점은, 맥서버니까 안되는 거라고 생각하겠습니다.
무려 5가지의 안드로이드폰으로 VPN 접속을 시도해봤고, 단 하나의 폰도 가능하지 않았었습니다.

9. 전화앱 자체의 에러가 심합니다.
하루종일 통틀어서 하루에 전화를 20분 이상 할까말까일 정도로 전화를 잘 안쓰는 전화기에서 종종 앱이 멈추는 현상이 생긴다면 좀 심하다고 생각드는데요, 아이폰도 에러는 납니다만 1주일에 한 번은 납득이 갈만한 수준입니다. 이건 기계마다 차이가 좀 있을 수 있으니, 저한테만 생기는 현상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10. 터치가 어딘가 모르게 2% 부족합니다.
런처프로를 쓰면 된다구요? 대체앱을 써야만 원기능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아직 상품화하지 말았어야한다는 게 제 의견입니다. 갤럭시는 좀 낫더라구요.


이상입니다.
테마라던지, 벨소리라던지 하는 극히 개인적인 취향에 해당하는 부분은 적지않고 최대한 사용상의 불편한 점에 대해서만 적어봤습니다.
맨 위에 적었듯, 리눅스를 1996년도부터 써오기 시작하면서 천리안 리눅스 동호회 운영진, 그리고 현 한국 우분투 포럼 운영진 등을 하면서 개인적으로는 정말로 리눅스를 사랑하지만, 안드로이드는 아이폰 때문에 너무 성급하게 내놓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안드로이드는 다시는 쓰고싶지 않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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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나의 타자속도는 897타였다. 단문 기준 2벌식이었고, 저게 내 최고 속도였다.
그런데 오늘 우연히 다운로드해서 쳐본 타자프로그램에서 897타를 훨씬 뛰어넘는 기록을 냈다.
960타... 타자속도 계산에 의문을 제기한 상태다 ㅎㅎ
(제작자분 왈, 정확하다고 하신다. 믿는다)
2벌식이며 애플 알루미늄 키보드(얇은거)로 쳤다. 진정한 고수는 장비탓을 하지않는 법!
 



한때 군생활 시절, 세벌식을 좀 배워볼려고 그렇게 용을 썼는데 손에 익은 2벌식을 떨치기가 아주 힘들더라...
마치 담배를 끊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세벌식 배우다 그냥 때려쳤고 지금껏 2벌식 그대로 쓴다.

오늘 이 계기로 갑자기 세벌식에 도전하고픈 욕구가 불타오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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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선희

그 외 2011. 1. 8. 20:55
어릴 적 초등학교 때, 내 방에는 작은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가 하나 있었다. 대략 아이패드만한 사이즈의 플레이어였는데 스피커가 붙어있는 거라 잠잘 때 매일 머리 맡에 노래를 틀어놓고 잠을 자곤 했다. 그때 늘상 듣던 음악이 이선희 앨범이었다.

며칠 전 우연히 유튜브에서 이선희 20주년 콘서트 몇 개를 봤다.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변함없는 가창력과 외모... 내가 즐겨듣는 헤비메틀 음악과 비교해서 절대 밀리지 않는 보컬의 파워...
내친김에 이선희 가창력에 대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웹서핑을 좀 해봤다.

나이가 어느정도 있는 분들은 제대로 알고있었지만, 이선희가 누군지 잘 모르는 나이가 어린 분들은 요즘 가수들의 편을 좀 들어주는 듯 했다.

사실 음악이란 게, 지극히도 개인취향 차이이기 때문에 누가 더 낫다느니 잘하느니 하는 일종의 평가가 사실 의미가 없는 쓸데없는 짓거리기인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수 이선희 님에 대한 신세대들의 지나친 평가절하는 잘못된 게 사실인 점은 분명하다. 물론 개개인의 취향차이는 절대적으로 존중한다.

이에 대해서 대학 때 교내 락밴드의 보컬을 해본 본인으로서 (스무살 시절에는 스틸하트의 쉬즈곤도 불렀다), 피아노를 15년 이상 쳐왔고 상대음감을 가진 청음력(설명하자면, 난 가만히 있는데 음악 혹은 멜로디를 들을 때 계이름이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능력을 의미한다. 별거 아니다. 아마 피아노 몇년 치신 분들은 다들 가능하리라 본다)의 보유자로서 몇 가지를 짚어보려고 한다. 물론 개인적인 평가이니 너무 딴지걸지 마시길 바란다.

먼저 웹사이트에서 말하는 가수 이선희 님의 평가는 여기를 참고하시길 바란다.
요약을 하자면, 마이클 잭슨의 부모와 셀린디온이 인정한 가창력, 엄청난 성량, 아이유가 존경하는 가수라는 점 등등이 나열되어있다. 가창력에 대해서는 나름 잘 설명되어있다.

스쿨밴드나마 음악을 해본 본인으로서 감히 평가라고 할 수 없지만 개인적인 소감을 내려본다.
일단 이것부터 보고 시작하자.
같은 노래지만 이건 더 파워풀하다. http://www.youtube.com/watch?v=6i0_4liY6ao

가수 이선희 님의 가창력은 진심으로 대한민국에서 100년에 한 명 나올까말까한 수준이라고 본다. 흠을 잡을만한데가 없는 가수로서의 완벽한 결정체다.
- 취향으로부터의 소감들
1. 아름다운 목소리
2. 쓸데없는 기교없이 풍부한 감정으로 시원하게 내지르는 목소리

- 테크니컬한 요소로부터의 소감들 - 타고났다고 본다.
3. 라이브인지 스튜디오 앨범인지 분간이 안갈 정도의 정확한 음정, 음감
4. 초고음역대에서 오히려 더 커지는 파워에, 결코 흔들리지 않는 안정감
5. 고음역대에서 아무리 노래를 오래 불러도 지치지 않는 파워와 긴 호흡
6. 고음역대에서 목소리의 음색을 거칠게 바꿔도 전혀 아무렇지 않은데다, 고음역대에서도 음색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수준.
7. 엄청난 성량 - 이게 중요하다 - 고음역대에서 마이크를 입에서부터 대략 50cm 정도 거리를 두는데, 그 정도 거리를 두고도 쩌렁쩌렁한 목소리.
(일각에서는 고음역대에서 마이크를 대고부르면 장비가 망가진다고 한다. 실제로도 앨범작업할 때면 스피커 몇 개씩 망가뜨린다고 한다)

3번부터 보자.
라이브를 잘 부르는 가수가 진짜 가수라는 말은 부정할 수 없는 진리이다. 그런데 가수 이선희 님의 가창력은 단순히 라이브를 잘 부른다는 수준이 아니라 라이브인지 스튜디오 앨범인지 분간이 안갈 정도이다.  
보통 가수가 노래를 부르기 위해 간주가 시작되면 첫 음을 부를 때 목/배에 힘을 얼마나 줘야 이만큼의 음정이 나오는지 몸에 배어야 정확한 음으로 노래를 부를 수가 있다. 다시 말해, "도"를 불러야할 때 "도"라는 음이 나오기 위한 자기 몸의 힘 조절을 할 수 있어야한다는 말이다. 당연한 얘기다. 이게 안되면 음치 소리를 듣는 거다.

근데 이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닌데, 두어곡 불러서 목을 좀 풀어주고 나면 음 조절에 대한 적응력이 생겨서 쉽게 되지만 허접한 가수들은 매 곡마다 곡 초기에 음을 헤매기도 한다. 그래서 발성연습도 하고 그러는 거지.
이선희 님의 가창력은 어느 노래를 하든 어느 상황에서든 아주 정확한 음정으로 노래를 부른다는 거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청음력이 있어서 노래를 듣다보면 이 가수가 원래 음까지 노래를 불렀는지 못불렀는지 그냥 들리는 수준인데(어떤 곡을 듣든 계이름이 자동으로 들리니까 그 계이름을 가수의 음과 비교를 할 수 있게 된다), 이선희 님의 라이브를 보면 아주아주 정확하다.

4, 5, 6번을 보자.
보통 아주 높은 음을 계속해서 부르게 되면 힘들고 지치게 되서 목/배가 금방 피로해지게 되고 그러다보면 당연히 목의 힘조절을 잘 못하게 된다. 당연하다. 그래서 삑사리가 나게 된다. 근데 이선희 님의 라이브를 보면 고음역대에서도 음정이 전혀 흐트러지지 않고 오히려 목소리가 더 커진다. 본인의 소견으로는 이선희 님이 관객들을 향해 소리칠 때 헤비메틀에서 남자보컬들이 하는 샤우팅 창법으로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닌가 싶다.

원래 고음역대에서는 목을 조이면서 소위 쥐어짜는 소리를 내면서 약간 미성을 내게 되는데, 이선희 님의 경우 오히려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를 큰 소리를 낸다. 이게 사실은 스피커에서 들으면 잘 모른다. 라이브를 가거나 바로 옆에서 들어보면 안다. 아마 온 몸이 울리면서 소름이 돋을 거다.
유튜브에 있는 "이선희 불후의 명곡" - http://www.youtube.com/watch?v=yYYxAN59JHE - 중 "아 옛날이여" 부분(6분 4초)을 보면 옆에 앉아있는 분들이 "아 옛날이여" 소절을 부를 때 다들 깜짝 놀라는 이유가 그 엄청난 성량에서 나오는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깜짝 놀라는 거다. 옆에서 듣는 분들 소름이 돋았을텐데, 소름이 듣는 이유가 옆에서 듣는 분들 몸 자체가 울리니까 소름이 돋는 거다. 본인이 전문가가 아니라서 설명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으니 전문가께서 보시면 첨언 부탁드린다. 음악하시는 분들, 두성/비음/진성/샤우팅을 귀로 구분이 가능하신 분들이 들으시면 아실 거다. 이선희 님의 고음역대에서의 성량은 듣는 사람의 온 몸이 울릴 정도의 수준인 거다.

특히나 고음역대에서 음색을 바꾸는 건, 다시 말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를다가 거친 느낌을 주게끔 허스키한 목소리를 높은 음역대에서 낼려면 배에서 내는 힘이 좋아야하고, 배에서 내는 힘이 좋아도 성대가 그 힘을 감당하지 못하면 삑사리가 난다 (본인 경험이다. 그래서 배에서 올라오는 힘을 목에서 줄여줘야하는데 이 과정에서 턱근육이 급속하게 피로해져서 노래를 많이 못한다는 문제가 생겼다. 결국 보컬을 그만뒀다).  그래서 목이 좋지않으면 목에서 내는 음색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게 어렵다. 게다가 고음역대에서 자유자재의 음색, 음정, 음감과 그 정도 수준의 성량은 타고나야한다고 본다. 연습하면 어느 정도야 되겠지만, 이선희 님만큼의 성량은 타고나야된다. 생각해보자. 불후의 명곡 나왔을 때가 46세라고 한다. 그 정도 나이에 그 정도 가창력을 유지했던 사람은 본인이 생각나는 사람으로서는 쥬다스 프리스트의 롭옹 밖에 없다.

아이유의 3단 고음을 들어보면 그냥 목에만 힘주고 끌어올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똑같은 부분을 이선희 님이 불렀으면 노이즈 없이 재생할만한 이어폰이 많지 않을 거다. 일각에서는 80년대 연예기획사들이 여가수 키우는 걸 포기했었다고도 한다. 

7번의 성량의 경우 위에서 다 얘기했지만, 유튜브에서 이선희 님의 라이브를 몇 개 보다보면 20주년 콘서트를 제외하고서는 고음역대에서 마이크를 30cm 이상 거리를 두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심지어는 딱 봐도 50cm 정도 떼는 것도 보이는데 그러고도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본인이 봤을 때는 그 정도 성량으로 마이크를 갖다대면 스피커 유닛이 찢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보컬을 해봤던 사람 입장으로서 내가 저렇게 소리 질렀으면 아마 2곡 부르고 목이 가라앉았을 거다. 참고로 본인은 목이 절대 쉬지않는다. 샤우팅 창법을 배운 뒤로는 절대 쉬지않는다. 그냥 가라앉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선희 님처럼 질러대면 2곡만에 목이 가라앉을 거다.

흔히 가창력 비교글에서 올라오는 가수 이은미 님의 노래를 들어보면, 가창력이야 한국 내에서만큼은 탑으로 쳐주는 분이니만큼 가창력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성량에서는 명함도 못내미는 수준이다. 이건 음악하시는 분들, 두성/비음/진성 등등을 귀로 구분이 가능하신 분들이 들어보면 공감하실 거다. 본인이 봤을 때 대한민국 어지간한 여자가수들 10명 모아놓고 이선희 님을 같이 무대에 세워서 "아름다운 강산"을 똑같이 부르면 10명의 목소리는 아마 하나도 안들릴 거다. 들리기야 하겠지만 백그라운드 보컬 마이크 수준으로나 들리겠지. 이선희 님과 같이 노래 불러서 목소리가 들리기라도 하는 수준이라면 인정할만한 수준일 정도인 거다.

네이버에서 본 건데, 머라이어 캐리랑 휘트니 휴스턴이 이선희 콘서트(인지 어딘지) 갔다가 이선희 님 노래부르는 거 보고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었다는 글을 봤는데 뭐 그런 건 잘 모르겠고 셀린디온이 이선희 콘서트 가서 감명받고 요청한 아름다운 강산 악보 얘기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니까 대단한 거지. 특히나 백인애들, 아니 서양애들 특유의 그 잘난체와 동양인들 깔보고 들어가는 기본 개념으로 봤을 때 그냥 넘겨짚을만한 얘기는 아닌 거다. 유튜브 가서 이선희 님 라이브에 대한 동영상 코멘트들 보면 영어로 적힌 코멘트들도 찬양 밖에 없다. 하기야 감히 딴지를 걸만한 수준이 아니니까.

다시 한 번 얘기하지만, 음악이란 건 지극히 개인취향의 차이가 크고 개개인마다 좋아하는 차이가 크기 때문에 누가 누구를 좋아하고 싫어하고에 대해서는 결코 딴지걸 생각이 없다. 하지만 일부 나이가 어린 분들의 막말 수준의 평가절하-예를 들면 노래는 좀 하는 것 같은데 누가 알아주나?-는 분명히 잘못된 거다. 본인 추측이지만, 그 어떠한 평론가/가수도 이선희 님의 가창력을 평가절하할 수 있는 사람을 없을 거라고 본다. 생각해보자. 여태껏 이선희 님의 노래를 리메이크 한 가수가 있기는 했나? 내가 알기론 20년의 세월동안 그 누구도 리메이크를 한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안할 거라고 본다.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지.

자신있게 얘기한다. 보컬로서의 요소를 여러가지 종합해봤을 때, 가수 이선희 님의 보컬은 대한민국에서 100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한 전세계급 수준이다. 저랑 같은 생각 갖고있는 전문가분들이 분명 계실 거다.
(그렇다고 해서, 100년 동안 그런 분들이 안나올 거라는 말이 아니다. 그만큼 대단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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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막한 단상을 남겨본다.

솔직히 본인은 타블로 노래를 단 한 곡도 들어본 적이 없다. 힙합은 아예 관심 밖인 음악일 뿐만 아니라, TV 자체를 잘 안보기 때문에 방송에 나오든 뭘하든 내가 알 바는 아니지. 근데 인터넷 보니까 타블로 때문에 아주 난리가 아니더라...

1. 안티들은 SAT도 안보고 어떻게 스탠포드 들어갔냐고 우기던데, 미국에 사는 나로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수능 안보고 서울대 들어간 거라고 생각하라는데, 미국대학입학을 꼭 한국식 기준으로 재면 안되거든. 학.석사를 3.5년만에 졸업했을 정도로 머리가 좋다면-울프교수가 첨에 불가능하다고 얘기했을만큼-SAT없이 입학하는 것도 가능했겠지. 암튼 내가 볼 때는 불가능하진 않다.

2. 안티들은, 어떻게 논문도 안쓰고 졸업했냐고 그러는데 난 어떻게 하지? 석사는 아니지만 울 학교도 졸업할 때 논문 따위 필요없는데. 울 학교 뿐만 아니라, 미국대학 대부분이 필수과목만 이수하고 졸업신청해서 OK되면 졸업장 나오는 거 아냐? 나 KCC 졸업할 땐 그랬는데.

3. 학사와 석사를 3.5년 만에 조기졸업한 게 말이 안된다고? 그럼 하와이 주립대 다니는 본인의 지인은 2년 전에 석사와 박사를 동시에 3년 안에 졸업하는 코스를 밟고있는데 그럼 그분은 어떻게 되는 거야? 나한테 석/박사 과정이라고 뻥치고 학교 교수 연구실에서 걸레질 하고있는 거야?

4. 그 외에도 사실 한국사람들 이름은 미국인들 입장에서 봤을 때 아주 어렵고 first name하고 middle name하고 분간이 안갈 정도로 지식이 없기 때문에 이름에 대한 혼란은 당연히 있을 수 밖에 없는 거고, 그거 말고 Amand라는 middle name도 한 번씩 썼던 거 같은데 그거야 middle name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미국사람 입장에서 전혀 문제될 게 없는 부분.

5. 학교생활 3.5년 하면서 어떻게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냐는 말에, 그럼 나는? 솔직히 말하면 나는 로컬친구가 한 명도 없는데. 방송 보는데 울 와이프가 나한테 이 얘기 해주네... 아 부끄러워... 하와이 생활 3년 동안 로컬친구도 없는데 아는 교수가 있을 리는 더더욱 만무하지.

6. 뭐 교무부학장이란 직책이 있느니 없느니로 따지는 건 좀 억지스러워 보였다... 어차피 다른 나라 말을 한국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건, 말이 다르니 해석하는 사람 맘이잖아. Stanford를 "스탠퍼드"라고 방송에 내보내는 번역을 봤을 때 그 정도 오역(?)은 충분히 가능하다. 미국식으로 발음하면 스탠폴~드 정도로 발음되니까 "스탠포드"라고 적는 게 맞겠지? 아님 말고. 번역자 맘이니까.

내 주관적인 의견으로는, 타진요 까페 회원들은 미국에 안가봤고 미국 대학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게 없는 사람들이 모여있는데 같다. 타블로가 방송에서 잘난척 좀 하고 그런 것은 개인적인 성격이니까 그걸로 왈가불가 할 수는 없는 거고, 내가 볼 땐 일단 스탠포드 나온 건 확실하다. 그나저나 기왕 검찰에서 수사하는만큼, 그 타진요인가 뭔가하는 까페사람들이나 좀 국가적으로 엄벌에 처해줬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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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 외 2010. 5. 25. 21:19


오늘 우연히 아주 놀라운 블로그를 발견했다.

예전에 아버지가 출연했던 TV 프로그램의 자료를 갖고있는 블로그가 있었던 거다...


한때 구글에서 찾으면 뭔가 나올까 싶어서 (아무래도 연예인이셨으니) 구글링을 해봤는데 아버지가 쓰셨던 예명이 검색으로는 도저히 자료를 찾을 수가 없는 정도였고 그래서 결국 포기했었는데 이렇게 하나 찾으니까 무척 반갑다고나 해야할까...

울 아버지는 MBC 코미디언 공채 2기 출신이다. 위키백과에는 안적혀있지만 "청춘만만세", "웃으면 복이와요" 등에 출연하셨었고 당시엔 꽤 유명했었다. 신문/잡지에서 인터뷰도 했었고, 미혼일 때는 결혼은 언제할꺼냐 류의 흔한 연예란에도 가끔 나오셨었다. 그에 관련된 신문/잡지자료는 아직도 집에 보관 중이다.  수많은 유명 코미디언들과 아는 사이었으며, 어릴적 기억에 코미디언 구봉서 씨의 팔순(인가 칠순인가) 잔치에서 사회도 봤었고, 개그맨 엄용수, 강석, 이용식, 김병조 등등과는 매일 같이 자고먹고한 사이였다고 한다.  내 동생은 이름이 두 개인데, 하나는 집에서 식구들끼리만 쓰는 이름이 있고, 다른 하나는 법적으로 등록된 이름이 있는데, 집에서 쓰는 이름을 개그맨 이용식 씨께서 지어준 이름이라고 한다.  그래서, 내 친구들이나 내 동생 친구들 사이에서는 아는 사람은 그 이름을 안다.


보통 코미디언/개그맨 아빠들은 무뚝뚝하고 집에서 하나도 안웃긴다는데, 울 아버지는 재밌었다. 어릴 때 나랑 동생한테 늘 최고였고 (상대적으로 어머니가 악역을 맡으셨다), 집에 놀러온 친구들한테도 용돈을 쥐어주셨던 분이었다. 그런데 어느날인가 PD랑 싸웠고 그 과정에서 PD 이빨 2개를 부러뜨리셨단다. 그후로 인생의 내리막길을 타기 시작하신거다. 연예인이 할 줄 아는 게 뭐 있겠나. 밤무대 전전하면서 타 방송사 엑스트라 출연하시고, 3류영화 조연으로 나오시면서 생활하셨는데 사실 그게 먹고살기위한 수단이었지, 본인의 꿈이나 어떤 목표가 있어서 하신 건 아니었다.


어찌됐든, 그것으로 인해 우리집은 참 어렵게 살았고 돈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일이 참 많았다. 지금도 없진 않다. 어릴 때 보고자란 그런 경험때문에 연예인은 정말 하지말아야할 직업이라고 생각하면서 자라왔던 것 같다. 물론 내가 연예인 하게 생긴 외모는 절대로 아니다.


98년 IMF터지고 바로 다음달인 1월에 악성폐렴으로 돌아가셨다.

어느 행사장에서 공연을 하고 돌아오셨는데 얼굴에 분장/화장을 하신 상태에 땀에 쩔은 상태이니 샤워를 안할 수가 없는 상황인데 마침 보일러가 고장나있는 상태였다. 결국 12월 한겨울에 찬물로 샤워를 하셨는데 그게 원인이 되서 돌아가시게 된거다. 그때 당시에는 밤 11시 12시에 갈 수 있는 목욕탕이나 그런 곳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실은 울 아버지는 결핵과 천식이란 병을 평생 달고사셨다. 계단을 조금만 올라가도 숨이차서 쉬었다 가야하고, 매일같이 약봉투를 갖고다니며 약을 드셔야했다. 그런 분이 몸으로 뛰어야하는 직업인 코미디언을 하셨으니 얼마나 힘들셨을런지는 나도 상상이 안간다.

원래 결핵은, 잘먹고 잘쉬면 완치가 되는 병이다. 그런데 잘 먹고 잘 쉬려면 일을 그만둬야하는데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 입장에서 일을 그만둘 수가 없으니 약에 의지하면서 평생을 사신 거다.


암튼 그 샤워 이후 병원에 입원하셨는데 좀처럼 퇴원을 안시켜주는거다. 그러다가 큰 병원으로 옮겨야한다는 주치의 말에 난 아버지가 곧 돌아가실 것이라고 확신 아닌 확신을 하게됐다. 사실 곁에서 결핵과 천식으로 고생하시는 아버지를 보고자란 아들이, 그런 상황에서 그런 확신을 하는 게 무리는 아니겠지. 난 그때 이미 마음의 준비를 했다. 아마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울었던 것 같다. 실제로 그 이후로는 한 번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내 동생 친구들은 (여동생이라 여자들이다) 나보고 매정하니 어쩌니하고 손가락질 하는 애들도 있었지만, 남자니까 그럴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한 애들도 있었단다. 뭐 암튼 그랬다. 그날 엄청 울고, 그 이후로는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심지어는 장례식장에서도, 화장터에서 화장할 때에도, 유골가루 뿌릴 때에도... (당시 할아버지가 살아계셨기 때문에 화장을 했다)


인하대 병원으로 옮기기 전부터 호흡기를 착용했는데, 그 호흡기에는 수면제가 들어있어서 계속 잠만 주무셨다. 게다가 그 호흡기는 법적으로 20일인가 이상을 착용할 수 없다고 한다. 진단병명이 악성폐렴이었고 호흡을 하면 폐에서 산소를 받아들이는 능력이 아주 저조한 상태라고 했다. 그래서 호흡기를 떼는 순간 돌아가시는 거라고 생각하면 된단다. 다행스러운 건 그래도 고통없이 주무시다 돌아가셨단 거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아쉬운 게,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계실 때 대화를 몇마디 못나눠봤다는 거다. 수면제 들은 호흡기만 착용하고 계셨으니 말을 하고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호흡기를 중간에 딱 한 번 떼셨는데, 그때 날 불러서 누구누구한테 돈 50만원 받을 거 있으니까 그거 잊지말고 꼭 받아라. 라는 말씀이었다. 그 와중에서도 식구들을 위해서 그 작은 돈이라도 잊지않으셨던 거다.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호흡기 착용하고 며칠 안있어서 호흡기를 떼게 됐는데 그때 당시 울 아버지가 엄청 난동(?)을 부리셨다고 한다. 내가 왜 호흡기를 착용해야하는지, 내가 왜 여기 입원해있어야하는지, 빨리 날 내보내달라고 그러셨단다. 그러면서 눈물을 흘리셨다는데, 아마도 그때 본인이 돌아가실 것을 예견하셨던 것 같다.

암튼, 그 50만원 잊지말라는 그 말을 들은 이후로는 한 번도 대화를 나눠보지 못했다. 다른사람에게 있어서, "우리 걱정하지 마세요. 잘 살께요" 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것 자체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난 그말 조차도 할 수 없었던 게 아쉬웠었다.


돌아가신 이후 몇년의 세월이 흐르고 훗날 어머니랑 이런 대화를 했다. 만약 아버지가 지금까지 살아계셨더라면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어머니랑 나랑 똑같이 생각했던 건, 아마 지금보다 더 못살았을 거다. 라는 결론이었다. 아버지한테 문제가 있었던 것이라기보단, 연예인이라는 직업 자체가 한국 사회에서는 아주 무능력한 존재라는 점인 거다. 기술도, 할 줄 아는 것도, 아무 것도 없는 빈털털이다. 적어도 울 아버진 그랬다. 게다가 돌아가시면서 빚까지 남기고 돌아가셨다. 그 빚은 아직도 남아있다. 2배로 커진 상태로.


군대 제대 후 이것저것 알바를 하다가 결국 새마을금고에 입사를 했고 거기서 3년 동안 경력을 쌓았다. 그 와중에 결혼을 했고 그후 여기 미국으로 유학을 와서 졸업한뒤 지금은 하와이 주 정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내 동생은, 한국 최고의 무역회사라고 불리는 "세아상역"에서 일하고 있다가 출산 후에는 육아에만 전념하고 있다. 고생하신 아버지 덕분에 우리는 나름대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도 벌써 십수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지금은 그냥 덤덤한 편이지만, 막상 이렇게 인터넷에서 찾은 사진 몇장으로인해 어릴적 과거의 일이 마치 비디오테이프를 빨리감듯 다시 머리 속에 전부 스쳐지나갔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고 되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지만, 나에게 주어진 남은 삶을 후회하지 않도록 열심히 사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아버지께의 효도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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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봐서는 무쟈게 철학적이다. 그런 내용을 쓸려고 한 건 아닌데 앞으로 쓸 내용에 적당한 제목같다.

나는 컴퓨터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하기시작한 이래, 줄곧 단 하나의 아이디만을 사용해오고 있다. PC통신 천리안을 쓰기시작한 95년도부터 지금껏 jswlinux라는 아이디만 써오고 있는데, 독특하기도 하거니와 딱 봐도 뭘 하는 사람인지도 파악이 될만큼 단순명료한 아이디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 아이디는 외국사람들에게도 쉽게 읽히는 아이디이다.

오늘 우연히 구글에서 내 아이디로 구글링을 해봤다. 나는 얼마나 유명할까. 구글은 나에 대한 정모를 얼마나 갖고있을까. 당연히 예상했던대로 그간 내가 작성해온 모든 글이 다 검색됐다. 개중에는 내가 왜 이런 글을 썼을까하는 챙피한 글도 있었고-나이가 좀 어려서그랬겠지만-, 이게 과연 내가 썼던 글이었나하고 놀란 글도 있었다. 예전에 새마을금고 다니면서 금고 내 오피스 프로그램을 오픈오피스로 도입하고자, 새마을금고 연합회 전산정보부와 얘기를 좀 나눈 적이 있었는데, 오픈오피스를 도입하면서 생겼던 문제를 오픈오피스 커뮤니티에 의뢰했고 김정규님께서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셨던 글까지 모두 읽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그런 글을 올린 적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을 하게됐다.

최근 과거의 나를 바라볼 땐, "음~ 그랬었지"라는 생각보다는, "내가 그랬었나?"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된다. 나이 탓일까? 그래봤자 이제 얼마 되지도 않는 나이이지만, 아직 자녀가 없어서 그런지 나와 내 와이프는 여전히 연애할 때 그대로다. 우리는 아직도 장난치고 아직도 농담따먹기하고 참 철없는 부부처럼 보이는데 아이가 없어서 그런 것 같다.

구글을 통한 과거의 내 모습, 비록 내 얼굴이 나오거나 내 모습이 나오는 사진 속의 나는 아니지만, 글을 통해서 그때당시의 나를 상상할 수 있고 지금의 나를 바라볼 수 있음은 아직도 옛추억에 사로잡혀 그때를 그리워하는 중년의 아저씨가 되가는 듯한 상상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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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윈도우7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함 깔아볼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칭 맥빠, 리눅스 광신도가 윈도우에 관심을 보이다니... 이건 배신, 배반이었다...

맥빠가 된 이후, 소프트웨어는 왠만하면 구입하자라는 나만의 신념을 갖게됐고 이후 몇몇

맥 프로그램을 구입해서 쓰고있다.

윈도우7... 가격이 장난이 아니다... 그래서 좀 고민을 하다가 어라... 학생할인이란 게 있단다...

유학생도 학생이니,  win741.com인가 거시긴가하는 사이트에 가서 구입을 했다.

그리고 와이프가 쓰는 소니 바이오에다 설치를 했다.

 

얘기가 잠깐 샜는데, 학생업글판은 홈프리미엄 버젼이었고 여기서는 언어팩이 설치가 안된다.

그래서 구글링을 했는데 스누피님의 블로그(http://snoopybox.co.kr/764)를 보게됐고 홈피를

보다보니 해병대에 관한 포스팅을 봤다. 그 글에 달린 댓글이 거의 해병대 출신들에 의해 달린

글들이었는데, 그걸 보다보니 갑자기 군생활 하던 시절의 생각이 났다...

나는 사실 군생활을 즐겨서 얘기하거나 하진 않는다. 익히 알려진대로 해병대의 이미지가 한국에선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고, 아무리 해병대가 빡센 부대라고는 해도, 군생활은 누구에게나 힘들기

때문에 나는 힘들게 했고 육군 나온 분들은 편안하게 했다는 이미지를 주고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스누피님 블로그에 써있는 말대로) 대한민국 해병대 청룡병장 857기이다. ㅎㅎ

22살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입대를 했고 포항 신병훈련단을 거쳐 2사단 5연대 2대대 화기중대

81mm 박격포병으로 자대배치를 받았다. 그때당시 내가 배치받은 곳은 2대대본부 옆에 위치한

화기중본이었고 새로지은 깨끗한 시설에서 첫 생활을 했다...

 

그때당시는 무척이나 무서웠었는데 - 이등병이니 당연하겠지만 - 이상했던 건, 내무실에 이등병들만

모여있었다는 거다. 나중에 알고보니 당시 5연대장인 배정인 연대장께서 5연대 병장들 싸그리 모아놓고

자갈 깔은 연병장에서 2-3시간을 굴렸다는 거다. 이것 역시 이렇게 된 이유가 있었는데, 당시 해병대

사령관께서, "2사단은 무슨 깡패부대야"라고 호통을 치던 게 그렇게 됐다는 거다.

어찌됐든, 그런 연대 분위기 때문에 구타/얼차려 등의 행위가 일시적으로 중단된 시기였고 운이

좋았던 나는 비교적 좋은 분위기에서 이등병 시절을 보냈다.

그때 화기중본에서 쫄병 구타하기로 아주 유명한 선임이 있었는데, 이 선임이 얼마나 무서웠냐면

"사람 패는 걸 즐기는" 취미가 있었던 거다. 그냥 톡톡/깔짝깔짝 때리는 수준이 아니라, 후임병을 완전

샌드백 취급했단거다. 날라차기 돌려차기 개머리판/팔꿈치 가격 등. 그런데도 나처럼 기합빠진 쫄병이

이분한테 안맞고 생활했다는 건, 당시 병장들 사이에서 구타에 대한 분위기가 얼마나 살벌했냐를

증명하는 거나 마찬가지였었다...

 

어찌됐든 덕분에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던 이등병들과 일병들... 쫄병의 고충을 함께 겪는 두 계급들

사이에서 나름대로 지낼만한 군생활을 했다.

5연대가 다 그렇지만, 대대가 돌아가면서 전방근무를 선다. 당시 3대대가 전방 도서지역에서

근무를 섰었고 2대대는 강화도 북한접경지역에서만 근무를 섰다. 그래서 2대대 내에서도

돌아가면서 전방근무를 서는데, 우리 화기중본도 강화도 철산리 지역으로 전방근무를 서게됐다.

짐을 싸고 이등병이라는, 정말로 모든 것이 무서울 시기에, 또 다시 낯선 지역으로 낯선 선임들과

만나게 됐다.

 

전방근무는 정말 살벌했다. 강화도는 북한하고 불과 2Km 이내에 있는 곳인데다 특히 강이 있어서

수로를 이용한 남침에 자주 이용되는 곳이다. 더 웃긴 건, 강화도 주민의 반은 간첩이라고 할 정도로

심한 곳이다. 특히 포병애들 훈련할 때 얘기를 들어보면, 포병이나 전차 쪽 애들이 산에서 훈련할 때

약초나 나물 등을 캐러온 아줌마 아저씨들이 훈련하는 걸 아주 유심히 본다고 한다.

그래서 몇몇 간부들이 가서, 훈련하니까 다른데로 이동해달라고 하면 잠시 없어졌다가 다시 몰래

나타나서 아주 유심히 관찰한다고 한다.

 

뭐 어찌됐든, 전방에서 근무서면서 정말로 간첩이 나타날거라고 굳게믿은 나는 적외선 탐지기로

근무시간 내내 들여다보면서 근무를 섰고, 결국엔 시간이 가면서 간첩은 안나타날 거라는 생각을

갖게됐다. 거기서 벽에 손가락 하나만을 기댄채 서서 잠들 수 있는 초인적인 스킬도 갖게됐다.

 

여기서도 사람 패는 게 취미인 선임이 하나 있었다. 다행히 계급이 일병이어서 그닥 힘이 없었다는

점이 다행스러웠지만, 전방 경계근무 특성상 밀폐된 공간에서 둘이만 남는다는 게 결정적이었다.

그런데 사람패는 게 취미인 사람들의 특징이, 오히려 같이 근무를 서게되면 아주 잘해준다는 거다.

이 사람도 같이 근무서는 날에는 구타/얼차려 이런 거 전혀 없이 농담따먹기나 하면서 근무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사실 전방근무에서는 조금 이유가 있는데, 전방근무는 실탄을 장전하고 근무하기 때문에

후임병을 너무 심하게 굴리면 홧김에 총질을 할지 모른다는 얘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선임 말고도 또 다른 수색대 출신의 선임도 사람 패는 걸 아주 좋아했는데, 역시 마찬가지로

근무 같이 나가면 농담따먹기 하고 같이 나간 후임병 아주 편안한 자세로 근무서게하고 그랬다.

하지만 근무시간 외에는 아주 악명높았다.

이곳 전방 철산리, 문주란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이등병 대부분의 시절을 보냈다.

 

이병 오장 (말호봉) 때 연대본부 작전과 행정병으로 차출되가는 내 군생활 일대 최대의 시련을

겪게된다... 행정병이면 좋은 거 아닐까? 뭐 대부분은 좋을거다. 하지만 작전과는 최악의 부서였다...

밤9시 10시 업무는 기본이었고, 5연대가 전방부대다보니 뭐 이상한 것만 떠도 전 간부집합에

덩달아 작전병까지 불려나가는 신세가 됐었다. 불려나가서 뭐 했을까?

강화도와 북한 사이에 흐르는 강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 무슨 물체가 하나 감지되면 그거 좌표

찍어준다고 불려와서 상황실에서 압정으로 좌표나 찍고있었단 거다...

물론, 전방에서 근무하는 대원들은 그 시간에 일어나서 비상대기했겠지...

그거 생각하면 그나마 좀 위안이 된다...

문제는 일요일에도 불려나가서 업무를 봤다는 거다...

 

당시 작전과장이 완전 또라이 수준이었는데, 안해도 될 일을 막 만들어내서 연대장에게 잘 보이려고

아래 부하직원을 혹사시켰다는 거다. 게다가 지가 한말 안지켰다고 정보선임하사 - 당시 백발의

하사관이었는데 추정나이가 거의 제대 직전이었다 - 호출해서는 연대본부가 쩌렁쩌렁하게 울릴

정도로 호통을 쳤던 또라이였다. 나이로 봐서는 지 삼촌뻘인데 아무리 군대가 계급사회이긴 했어도

그분한테 그런 호통을 친건 너무했다는 수준을 넘어선 또라이짓으로 보였단 거다...

암튼 그분 덕분에 제대하기 1주일 전까지 하루에 3시간만 자면서 행정업무를 봤다.

제대하기 전까지 단 하루라도 잠을 7시간 이상 잔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입대하기 전에 내 생활패턴이

저녁 9시부터 아침 7시까지 PC통신하고, 아침 7시에 잠들어서 저녁 9시에 일어나는 초 폐인 생활을

했던 나에게는 그야말로 나태해진 나를 바로잡는 곳이 아니었던가 싶다...

 

그나마 군생활 하면서 위안이 됐던 건, 작전보좌관들이 아주 좋았단 거였다. 원래 생활하기 힘든

부대일수록 사람들이 좋다라는 말을 신병 때부터 들어왔었는데, 그게 행정도 그랬단 거다...

그래서 1사단은 훈련이 많아서 선후임간에 사이가 좋고, 2사단은 훈련없이 맨날 하는 일이

전방경계근무다보니 쓸데없이 애들 때리기나 하고 기합이나 주고 그런다는 거였다...

 

한 가지 일화가 있다.

내가 상병 때였나, 연대장 권총이 없어졌다. 정말 연대본부가 뒤집어졌다. 한 2일 정도는 내부적으로

찾으려고 했는데 찾다찾다 결국은 못찾아서 헌병대로 수사가 넘어갔다. 그래서 당시 간부란 간부는

싸그리 헌병대 불려가서 조사를 받았는데, 하필 FTX 훈련이랑 겹치게 됐다. 그래서 FTX 훈련계획을

작전보좌관이 작성해서 예하부대에 시달을 해야되는데, 시간이 안되니까 나보고 작성해서 시달하라는

거였다. ㅎㅎㅎ

물론 늘상 하는 훈련이라 내용은 다 거기서 거기지만, 어찌됐든 나는 FTX 훈련계획을 작성해서

대대로 시달을 했고 당연한 말이지만 아무 이상 없었다. 그리고 며칠 후 우리 대원들도 헌병대에

불려가서 조사를 받게됐다.

수사관: 너네들 x월 x일날 다들 뭐하고 있었냐?

나: 저는 국지도발 FTX xx차 훈련계획 짜고있었고 일병 배상진 

      (작전병 후임, 상진아. 이름 공개해서 미안하다. 빼!!) 은 다른 업무를 보고있었습니다.

수사관: 너 혼자서 작전계획을 짜?

나: 네... 늘상 하는 일이라...

수사관: 야, 니가 왠만한 소위보다 훨 낫다.

 

그만큼 나의 업무량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급기야는, 일반 병으로서 작전계획 5027의 모든

내용을 꿰뚫어볼 정도가 된 것이었다 (사실 작전계획은 용어가 모두 군대용어라, 일반인이 읽어보면

이해가 잘 안간다. 법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물론 작전과장이 툭하면 작전계획을 수정하는 탓에

나까지 덩달아 작전계획을 계속해서 보게됐지만, 어찌됐든 5연대 작전계획5027은 대부분 알고있었다.

 

나중에는 군대에 말뚝박고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의 업무처리능력은 연대본부 전 간부들을 통해서 익히 검증이 되어있었고, 내가 하사관을 지원하고

싶다고 말을 꺼내니까 인사과장부터 인사선임하사까지 모두 발벗고 나서서 도와준다고 했었다.

아무래도 근무하는 곳이 연대본부다보니 대위, 중위, 상사, 중사와는 아주 친하게 지냈다.

그래서 지원을 했는데, 사단에서 딱 한명 뽑는댄다. 그 중 집안형편이 가장 어려운 사람을 뽑는다고

했는데, 울집이 그렇게 어렵진 않았는가보다. 그리고나서 후임들이 하는 말이, 내가 군대에 말뚝박을

스타일은 아니라고 했다... 그냥 전역해서 다른 일을 해보라고 한다...

 

전역을 했고, 건설회사에서 1년 일하고 특허출원하고 1년 놀다가 결국은 은행에 취직해서 3년간

일한 뒤 지금 있는 이곳 하와이에 유학을 온 뒤 졸업하여 주정부 직원으로 취업했다. 누가봐도 내가 해병대 나온 사람같지 않댄다. 오히려

군대를 안갔다온 사람 같다고 한다. 사실 내가 좀 강하지도, 굳세어보이지도 않는 건 사실이다...

제대하고 후에 은행에 취직해서 여자들만 있는 곳에서 근무하다보니 해병대를 나왔다는 사실이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됐다. 그냥 군대를 나왔다는 것뿐이었고, 군대를 나오든 안나오든 여직원들만

우글대는 직장에서는 별로 중요한 사항이 아니었다.

 

일을 얼마나 잘하느냐가 관심이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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