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에 대한 추억...
얼마 전 윈도우7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함 깔아볼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칭 맥빠, 리눅스 광신도가 윈도우에 관심을 보이다니... 이건 배신, 배반이었다...
맥빠가 된 이후, 소프트웨어는 왠만하면 구입하자라는 나만의 신념을 갖게됐고 이후 몇몇
맥 프로그램을 구입해서 쓰고있다.
윈도우7... 가격이 장난이 아니다... 그래서 좀 고민을 하다가 어라... 학생할인이란 게 있단다...
유학생도 학생이니, win741.com인가 거시긴가하는 사이트에 가서 구입을 했다.
그리고 와이프가 쓰는 소니 바이오에다 설치를 했다.
얘기가 잠깐 샜는데, 학생업글판은 홈프리미엄 버젼이었고 여기서는 언어팩이 설치가 안된다.
그래서 구글링을 했는데 스누피님의 블로그(http://snoopybox.co.kr/764)를 보게됐고 홈피를
보다보니 해병대에 관한 포스팅을 봤다. 그 글에 달린 댓글이 거의 해병대 출신들에 의해 달린
글들이었는데, 그걸 보다보니 갑자기 군생활 하던 시절의 생각이 났다...
나는 사실 군생활을 즐겨서 얘기하거나 하진 않는다. 익히 알려진대로 해병대의 이미지가 한국에선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고, 아무리 해병대가 빡센 부대라고는 해도, 군생활은 누구에게나 힘들기
때문에 나는 힘들게 했고 육군 나온 분들은 편안하게 했다는 이미지를 주고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스누피님 블로그에 써있는 말대로) 대한민국 해병대 청룡병장 857기이다. ㅎㅎ
22살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입대를 했고 포항 신병훈련단을 거쳐 2사단 5연대 2대대 화기중대
81mm 박격포병으로 자대배치를 받았다. 그때당시 내가 배치받은 곳은 2대대본부 옆에 위치한
화기중본이었고 새로지은 깨끗한 시설에서 첫 생활을 했다...
그때당시는 무척이나 무서웠었는데 - 이등병이니 당연하겠지만 - 이상했던 건, 내무실에 이등병들만
모여있었다는 거다. 나중에 알고보니 당시 5연대장인 배정인 연대장께서 5연대 병장들 싸그리 모아놓고
자갈 깔은 연병장에서 2-3시간을 굴렸다는 거다. 이것 역시 이렇게 된 이유가 있었는데, 당시 해병대
사령관께서, "2사단은 무슨 깡패부대야"라고 호통을 치던 게 그렇게 됐다는 거다.
어찌됐든, 그런 연대 분위기 때문에 구타/얼차려 등의 행위가 일시적으로 중단된 시기였고 운이
좋았던 나는 비교적 좋은 분위기에서 이등병 시절을 보냈다.
그때 화기중본에서 쫄병 구타하기로 아주 유명한 선임이 있었는데, 이 선임이 얼마나 무서웠냐면
"사람 패는 걸 즐기는" 취미가 있었던 거다. 그냥 톡톡/깔짝깔짝 때리는 수준이 아니라, 후임병을 완전
샌드백 취급했단거다. 날라차기 돌려차기 개머리판/팔꿈치 가격 등. 그런데도 나처럼 기합빠진 쫄병이
이분한테 안맞고 생활했다는 건, 당시 병장들 사이에서 구타에 대한 분위기가 얼마나 살벌했냐를
증명하는 거나 마찬가지였었다...
어찌됐든 덕분에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던 이등병들과 일병들... 쫄병의 고충을 함께 겪는 두 계급들
사이에서 나름대로 지낼만한 군생활을 했다.
5연대가 다 그렇지만, 대대가 돌아가면서 전방근무를 선다. 당시 3대대가 전방 도서지역에서
근무를 섰었고 2대대는 강화도 북한접경지역에서만 근무를 섰다. 그래서 2대대 내에서도
돌아가면서 전방근무를 서는데, 우리 화기중본도 강화도 철산리 지역으로 전방근무를 서게됐다.
짐을 싸고 이등병이라는, 정말로 모든 것이 무서울 시기에, 또 다시 낯선 지역으로 낯선 선임들과
만나게 됐다.
전방근무는 정말 살벌했다. 강화도는 북한하고 불과 2Km 이내에 있는 곳인데다 특히 강이 있어서
수로를 이용한 남침에 자주 이용되는 곳이다. 더 웃긴 건, 강화도 주민의 반은 간첩이라고 할 정도로
심한 곳이다. 특히 포병애들 훈련할 때 얘기를 들어보면, 포병이나 전차 쪽 애들이 산에서 훈련할 때
약초나 나물 등을 캐러온 아줌마 아저씨들이 훈련하는 걸 아주 유심히 본다고 한다.
그래서 몇몇 간부들이 가서, 훈련하니까 다른데로 이동해달라고 하면 잠시 없어졌다가 다시 몰래
나타나서 아주 유심히 관찰한다고 한다.
뭐 어찌됐든, 전방에서 근무서면서 정말로 간첩이 나타날거라고 굳게믿은 나는 적외선 탐지기로
근무시간 내내 들여다보면서 근무를 섰고, 결국엔 시간이 가면서 간첩은 안나타날 거라는 생각을
갖게됐다. 거기서 벽에 손가락 하나만을 기댄채 서서 잠들 수 있는 초인적인 스킬도 갖게됐다.
여기서도 사람 패는 게 취미인 선임이 하나 있었다. 다행히 계급이 일병이어서 그닥 힘이 없었다는
점이 다행스러웠지만, 전방 경계근무 특성상 밀폐된 공간에서 둘이만 남는다는 게 결정적이었다.
그런데 사람패는 게 취미인 사람들의 특징이, 오히려 같이 근무를 서게되면 아주 잘해준다는 거다.
이 사람도 같이 근무서는 날에는 구타/얼차려 이런 거 전혀 없이 농담따먹기나 하면서 근무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사실 전방근무에서는 조금 이유가 있는데, 전방근무는 실탄을 장전하고 근무하기 때문에
후임병을 너무 심하게 굴리면 홧김에 총질을 할지 모른다는 얘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선임 말고도 또 다른 수색대 출신의 선임도 사람 패는 걸 아주 좋아했는데, 역시 마찬가지로
근무 같이 나가면 농담따먹기 하고 같이 나간 후임병 아주 편안한 자세로 근무서게하고 그랬다.
하지만 근무시간 외에는 아주 악명높았다.
이곳 전방 철산리, 문주란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이등병 대부분의 시절을 보냈다.
이병 오장 (말호봉) 때 연대본부 작전과 행정병으로 차출되가는 내 군생활 일대 최대의 시련을
겪게된다... 행정병이면 좋은 거 아닐까? 뭐 대부분은 좋을거다. 하지만 작전과는 최악의 부서였다...
밤9시 10시 업무는 기본이었고, 5연대가 전방부대다보니 뭐 이상한 것만 떠도 전 간부집합에
덩달아 작전병까지 불려나가는 신세가 됐었다. 불려나가서 뭐 했을까?
강화도와 북한 사이에 흐르는 강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 무슨 물체가 하나 감지되면 그거 좌표
찍어준다고 불려와서 상황실에서 압정으로 좌표나 찍고있었단 거다...
물론, 전방에서 근무하는 대원들은 그 시간에 일어나서 비상대기했겠지...
그거 생각하면 그나마 좀 위안이 된다...
문제는 일요일에도 불려나가서 업무를 봤다는 거다...
당시 작전과장이 완전 또라이 수준이었는데, 안해도 될 일을 막 만들어내서 연대장에게 잘 보이려고
아래 부하직원을 혹사시켰다는 거다. 게다가 지가 한말 안지켰다고 정보선임하사 - 당시 백발의
하사관이었는데 추정나이가 거의 제대 직전이었다 - 호출해서는 연대본부가 쩌렁쩌렁하게 울릴
정도로 호통을 쳤던 또라이였다. 나이로 봐서는 지 삼촌뻘인데 아무리 군대가 계급사회이긴 했어도
그분한테 그런 호통을 친건 너무했다는 수준을 넘어선 또라이짓으로 보였단 거다...
암튼 그분 덕분에 제대하기 1주일 전까지 하루에 3시간만 자면서 행정업무를 봤다.
제대하기 전까지 단 하루라도 잠을 7시간 이상 잔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입대하기 전에 내 생활패턴이
저녁 9시부터 아침 7시까지 PC통신하고, 아침 7시에 잠들어서 저녁 9시에 일어나는 초 폐인 생활을
했던 나에게는 그야말로 나태해진 나를 바로잡는 곳이 아니었던가 싶다...
그나마 군생활 하면서 위안이 됐던 건, 작전보좌관들이 아주 좋았단 거였다. 원래 생활하기 힘든
부대일수록 사람들이 좋다라는 말을 신병 때부터 들어왔었는데, 그게 행정도 그랬단 거다...
그래서 1사단은 훈련이 많아서 선후임간에 사이가 좋고, 2사단은 훈련없이 맨날 하는 일이
전방경계근무다보니 쓸데없이 애들 때리기나 하고 기합이나 주고 그런다는 거였다...
한 가지 일화가 있다.
내가 상병 때였나, 연대장 권총이 없어졌다. 정말 연대본부가 뒤집어졌다. 한 2일 정도는 내부적으로
찾으려고 했는데 찾다찾다 결국은 못찾아서 헌병대로 수사가 넘어갔다. 그래서 당시 간부란 간부는
싸그리 헌병대 불려가서 조사를 받았는데, 하필 FTX 훈련이랑 겹치게 됐다. 그래서 FTX 훈련계획을
작전보좌관이 작성해서 예하부대에 시달을 해야되는데, 시간이 안되니까 나보고 작성해서 시달하라는
거였다. ㅎㅎㅎ
물론 늘상 하는 훈련이라 내용은 다 거기서 거기지만, 어찌됐든 나는 FTX 훈련계획을 작성해서
대대로 시달을 했고 당연한 말이지만 아무 이상 없었다. 그리고 며칠 후 우리 대원들도 헌병대에
불려가서 조사를 받게됐다.
수사관: 너네들 x월 x일날 다들 뭐하고 있었냐?
나: 저는 국지도발 FTX xx차 훈련계획 짜고있었고 일병 배상진
(작전병 후임, 상진아. 이름 공개해서 미안하다. 빼!!) 은 다른 업무를 보고있었습니다.
수사관: 너 혼자서 작전계획을 짜?
나: 네... 늘상 하는 일이라...
수사관: 야, 니가 왠만한 소위보다 훨 낫다.
그만큼 나의 업무량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급기야는, 일반 병으로서 작전계획 5027의 모든
내용을 꿰뚫어볼 정도가 된 것이었다 (사실 작전계획은 용어가 모두 군대용어라, 일반인이 읽어보면
이해가 잘 안간다. 법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물론 작전과장이 툭하면 작전계획을 수정하는 탓에
나까지 덩달아 작전계획을 계속해서 보게됐지만, 어찌됐든 5연대 작전계획5027은 대부분 알고있었다.
나중에는 군대에 말뚝박고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의 업무처리능력은 연대본부 전 간부들을 통해서 익히 검증이 되어있었고, 내가 하사관을 지원하고
싶다고 말을 꺼내니까 인사과장부터 인사선임하사까지 모두 발벗고 나서서 도와준다고 했었다.
아무래도 근무하는 곳이 연대본부다보니 대위, 중위, 상사, 중사와는 아주 친하게 지냈다.
그래서 지원을 했는데, 사단에서 딱 한명 뽑는댄다. 그 중 집안형편이 가장 어려운 사람을 뽑는다고
했는데, 울집이 그렇게 어렵진 않았는가보다. 그리고나서 후임들이 하는 말이, 내가 군대에 말뚝박을
스타일은 아니라고 했다... 그냥 전역해서 다른 일을 해보라고 한다...
전역을 했고, 건설회사에서 1년 일하고 특허출원하고 1년 놀다가 결국은 은행에 취직해서 3년간
일한 뒤 지금 있는 이곳 하와이에 유학을 온 뒤 졸업하여 주정부 직원으로 취업했다. 누가봐도 내가 해병대 나온 사람같지 않댄다. 오히려
군대를 안갔다온 사람 같다고 한다. 사실 내가 좀 강하지도, 굳세어보이지도 않는 건 사실이다...
제대하고 후에 은행에 취직해서 여자들만 있는 곳에서 근무하다보니 해병대를 나왔다는 사실이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됐다. 그냥 군대를 나왔다는 것뿐이었고, 군대를 나오든 안나오든 여직원들만
우글대는 직장에서는 별로 중요한 사항이 아니었다.
일을 얼마나 잘하느냐가 관심이었을 뿐...